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파비 제국 (문단 편집) === 결과: 시아파를 통한 민족적 대립 === 실제로 현대 [[이슬람 극단주의]]자들이 이란이나 시아파를 칭할 때 사파비라는 용어를 아직도 사용하는 편이다. 사파비 이전에도 시아파 왕조로 파티마 왕조등이 존재했으나 시아파는 1~5% 남짓한 극소수였고 그 당시엔 다 같은 무슬림이라는 의식이 강했다. 그러나 종파간 대립이 격화되어 사파비 왕조는 수니파와 노골적으로 대립하며 성립되었고, 이는 10% 가량에 달하는 시아파의 급성장으로 이어졌으며 그 시아파 절반이 이란이다. 그 결과 사파비 왕조의 등장은 '''언제나 소수파로 존재할 줄 알았던 시아파가 수니파의 위협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강성해질 수 있다'''는 경고와 함께 수니파 세계에 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주었다. 물론 사피비 왕조 등장 이전의 주요 시아파 왕조였던 [[파티마 왕조]] 같은 경우, 이슬람 세계의 심장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토 중 하나이던 [[이집트]]를 장악하고 [[칼리파]]를 자처하며 이슬람권의 중심부인 중근동에서도 두드러지는 영향력을 떨친 바 있기는 하다. 하지만 파티마 왕조 같은 경우 지배층이 스스로를 [[시아파]]로 정체화했을 뿐, 피지배층들의 대다수는 수니파... 라기보다도 그냥 '무슬림' 으로 자신들을 정체화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. 즉, 수니파/시아파 갈등이란 기본적으로 지배층-귀족층들의 명분 갈등이었고, 대부분의 피지배층들에게는 그냥 "저번 칼리프님도 무슬림이고 이번 칼리프님도 무슬림이지. 근데 예배시간에 설교하는 내용중에 좀 다른게 있긴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' 정도의 문제였다는 것. 하지만 사파비 왕조의 경우 안 그래도 이전부터 '아랍인'과 분명히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'페르시아인'을 규합하여 '시아파'라는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시아-수니 갈등을 단순히 일부 지배층, 신학자들간의 신학적, 명분적 대립에서 '민족 집단간의 갈등'에 가까운 형태로 전환시킨 것이다. 달리 말하자면 이전까지의 수니-시아 갈등을 같은 나라 내에서 정당간의 갈등(보통 수니파가 집권하지만 가끔은 시아파가 집권)에 비유한다면, 사파비 왕조의 경우 이란(페르시아) 지역과 그 주민들을 시아파로 정체화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의 다른 중심부에서 '떨어져 나가려는'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